우주먼지

모월모일 100623 (18:33)
어른 여자는 누군가에게 ‘엄마’ ‘언니’ ‘누나’ ‘여동생’ ‘아줌마’ ‘할머니’ ‘이봐요’ ‘여보’ ‘마누라’ ‘여편네’ ‘당신’ ‘여사님’이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이중 무엇도 어른 여자의 정체성을 규정할 순 없을 것이다. 그녀의 정체는 그저 어른 여자이며, 언제나 자기 자신일 것이다.

가끔 소식이 오면 심장이 뛰는 ‘어른 여자’를 한 명 알고 있다. 그녀와 나는 딱 두 번 만났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아낀다. 어른 여자는 내게 우주처럼 활짝 핀 꽃 판화 그림이나 옛날 희곡집을 보내주었다. 첫 대사가 “추워요”로 시작하는 회곡집이다.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한 백 년, 혼자 숨어 보고 싶은 손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. 일전에 내가 쓴 산문집을 보냈더니 한참 뒤 이런 답장이 왔다.
“연준씨가 쉰이 되고, 예순이 되어서 쓸 글들을 따라 읽을 수 없다는 이 슬픔. 그러나 내가 없을 이곳에서 풍염하고도 강건할 나무 한 그루를 예감한다는 이 기쁨.”
어른 여자와 내 나이를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다 길 한복판에서 찔끔찔끔 울었다. 가난한 비처럼, 상상하면 내 앞에 제일 먼저 당도하는 어른 여자를 언젠가 잃을지 모르겠구나, 생각하며 울었다.

해 좋은 날 벤치에 앉아 어른 여자가 지나가길 기다린다. 오지 않는다. 내가 어른 여자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. 쉽지 않다. 어른 여자는 ‘어른이고 여자이기’에 세상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다. 치장 없이 눈빛만으로 빛날 수 있다. 그러나 알다시피, 어른 여자는 흔하지 않다. 어른 남자가 드문 것처럼. 어른이 못 된 여자, 여자라기보다 늙은 어른, 어른이 되기엔 상처가 많은 여자, 여자 따위는 되고싶지 않은 어른…… 어른 여자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. 나는 모르는 게 많아 어른 여자가 못 된 사람. 언젠가 될 수 있을까. 진짜 어른 여자는.